작성자 : 222 / 작성일 : 2014-12-24
동아일보 홍수용 기자 연수기①
집과 자동차를 서둘러 마련해야 연수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적당한 물건이 있는지, 제대로 된 중개업자를 만나는지 등 외부요인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이 지체될 수 있는 거지요.
연수생활에 있어 집과 차 다음으로 중요한 운전면허. 이건 좀 다릅니다. 현지 운전면허 발급체계를 숙지하고 구비서류를 잘 갖추면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현지 면허 없이 국제운전면허만으로도 운전이 가능하긴 하지만 기간에 제한이 있는데다 새 차를 구입할 수도 없습니다. 매번 여권과 DS2019 서류를 갖고 다녀야 하는 불편도 따릅니다. 제 경우 운전면허를 따기 전까지는 중요한 숙제를 하지 않고 미루고 있는 듯해 늘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시험보다 어려운 6점 채우기
면허 발급체계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큰 골격은 비슷합니다.
면허시험은 차량관리국사무소(DMV)에서 봅니다. 보통 1차는 필기시험이고 2차는 실기시험입니다. 뉴저지의 경우 한국 국제운전면허증과 국내운전면허증을 함께 가지고 가면 2차 실기시험을 면제해 줍니다. 지역별 DMV 홈페이지에서 관련 사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테러 우려가 있는 뉴욕이나 뉴저지, 워싱턴 같은 지역에선 시험을 보기 전 자격을 검증하는 절차가 있는데 이게 실제 시험보다 더 어렵습니다. 6포인트 프로그램(6 point ID verification program)이라는 겁니다. 수험자가 자국에서 체류하고 있으며 거주지가 확실해 범죄 우려가 적다는 점을 입증하는 절차입니다.
이 6포인트를 어떻게 채우느냐가 관건입니다. 필요한 서류는 크게 프라이머리 서류군과 세컨더리 서류군으로 나뉩니다. 각각의 군에서 최소 1개 이상의 서류를 갖춰야 합니다. 소셜시큐리티 넘버, 여권, I-94, 고용 증명 카드, 결혼증명서, ATM카드, 뱅크스테이트먼트 등 아주 복잡합니다. 각각의 서류마다 배점도 다릅니다.
우리 같은 연수자 입장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준비할 수 있는 서류를 염두에 두고 미리 준비하면 좋습니다. 우선 4점짜리는 여권과 입국할 때 출입국 증명에 관한 INS의 도장이 찍힌 I-94 양식(여권에 스테이플러로 찍어주는 흰색 쪽지)입니다. 모든 연수자들은 이게 있으므로 일단 4점 확보입니다. 2점만 확보하면 되는데 은행 ATM카드(뱅크스테이트먼트와 함께 제출)와 소셜시큐리티카드가 각각 1점입니다. 은행ATM카드는 계좌를 만들면 바로 얻을 수 있고 뱅크스테이트먼트는 계좌 개설 후 약 2-3주 지나면 은행에서 날아옵니다.
문제는 일종의 주민등록증인 소셜시큐리티카드인데 각 지역 시청에 있는 소셜국이라는 곳에서 발급해줍니다. 여권, DS2019(또는 I-20) 서류, 입학허가서, 영문재직증명서를 가지고 가면 됩니다. 배우자는 이 카드가 발급이 안 됩니다. 그래도 소셜시큐리티카드 발급거부서류(Denial letter)를 만들어 달라고 해야 합니다. 이 서류가 있어야 배우자도 운전면허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밖의 6포인트 관련서류는 각 지역 DMV 홈페이지에 자세히 나와 있으므로 참고하면 됩니다. 구글에서 연수지역명과 DMV를 치면 홈페이지 검색이 가능합니다.
6포인트를 채웠어도 내가 사는 주소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참고용으로 제출해야 합니다. 가스청구서나 전기요금 영수증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주소지 증명서류입니다. 아직 거주기간이 오래되지 않아 청구서가 없다면 임대차계약서 원본을 보여줘도 됩니다.
○상식적이지만은 않은 시험
시험의 난이도가 높진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 상황과 다른 문제도 나옵니다. 필기시험 문제는 한인마켓이나 식당, 한인회사무실 같은데다 현지 교민홈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DMV 홈페이지에서 운전면허시험 관련 영문교재를 내려받아도 됩니다. 꽤 길지만 한글문제집의 오역 때문에 이상해 보였던 내용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한국 상황과 다른 문제’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신호등의 노란불이 계속 깜박이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문제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한국에서 계속 깜박이는 노란불을 봤다면 ‘신호등이 고장 났구나’라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답은 ‘주의하면서 천천히 통과’였습니다. 자만하지 말고 문제를 꼭 읽어보고 시험장에 들어가시길 권합니다.
실기시험은 차를 운전하기 전에 수신호방법과 차량의 제어장치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를 테면 운전자가 창밖으로 손을 왼쪽으로 편다면 좌회전하겠다는 신호이고 아래로 떨어뜨린다면 속도를 늦추라는 뜻입니다. 제어장치 테스트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어떻게 잡는지, 비상등은 어디에 있는지 등을 물어보는 겁니다.
본 실기시험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기본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에 중점을 둔다고 보면 됩니다. 안전속도를 유지하고 차선변경 때 반드시 고개를 돌려 확인하는 시늉을 하고 빨간불에서 3초 멈추고 하는 것들입니다.
○화 내지 말라
DMV는 한마디로 시장 통입니다. 한국처럼 체계적이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습니다. 거기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서비스하려는 자세가 돼 있진 않습니다.
꼬투리를 잡으려고도 합니다. 저보다 일주일 앞서 시험을 보러 갔던 제 아내는 6포인트가 안 돼 시험을 못 봤습니다. 그 다음 주 제가 시험을 보러 갈 때 따라간 아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에 거절당했던 서류를 그대로 냈는데 이번에는 OK라는 겁니다. 아내도 저와 같이 시험을 보고 면허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황당한 꼬투리를 잡아 서류 접수를 거부하는 직원에게 화부터 냈던 저와 달리 상냥하게 대했던 아내의 인상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합리적인 듯 하면서도 대단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미국사회의 단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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