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222 / 작성일 : 2014-12-24
2011년 5월.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를 이끌어온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소식에 미국 뉴욕은 크게 술렁거렸습니다. 단기적이긴 하겠지만 금융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낙관론과 보복테러 우려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부정론이 월가의 지배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이미 이런 반응은 국내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이번 일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제가 궁금했던 대목입니다.
○ 피 묻은 장난감 애써 외면하는 뉴요커
네덜란드 출신 미국인 3세 리처드 크윈 씨는 전형적인 뉴요커입니다. 자기 일과 취미생활을 중시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는 주관에 따라 행동하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와는 코드가 다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친구가 중국인이어서 동아시아 문화를 이해하려는 그의 노력 덕에 10개월 간 친분을 유지해올 수 있었지요.
진압작전이 알려진 다음날인 5월 2일 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그에게 ‘뉴스 재밌게 봤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습니다. “미국인이라면 재밌지 않았을 거다. 9.11 사태 때 우리는 가족과 동료와 친구를 잃었다. 백악관으로 향하던 비행기를 저지한 용감한 탑승객 덕에 더한 피해도 막을 수 있었다. 이번 진압작전으로 그날의 공포와 슬픔이 가시진 않는다.”
제 눈길을 끌었던 진압작전 후 비디오의 한 장면, 피 묻은 장난감과 엉망이 된 가족들의 에 침실에 대한 느낌도 물어봤습니다. “모두가 고의로 침묵하고 있는 장면이다. 대의가 중요하기 때문에 가슴 아픈 민간인과 아이의 죽음의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 같다.”
몇몇 언론과 친알카에다 성향의 단체들이 ‘콜레터럴 데미지(군사작전에 수반되는 민간인의 피해’의 잔인함을 지적하고 있지만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도 이런 미국인들의 암묵적 합의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빈 라덴을 생포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
오사마 빈 라덴 사살과 관련해 뉴요커들이 제기하는 2가지 의문은 ‘왜 생포하지 않았나’하는 점과 ‘수장(水葬)을 한 것이 잘한 조치인가’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의문과 관련해 공화당은 중요 정보를 캐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며 비판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스페인 출신 변호사로 타임스퀘어 인근 법무법인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한 사라 씨는 “만약 생포했다면 관타나모 지역에 감금돼 군사법원에 회부될 것인데 이런 절차의 적법성을 둘러싼 논란으로 세월을 흘려보내야 했을 것이다”며 “사상 최악의 테러의 주동자에 대한 처벌을 신속하게 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조치”라고 말합니다. 적법성 여부를 떠나 9.11 테러를 일으킨 장본인에게는 인권이 존중될 수 없다는 것이 직접적 피해지역인 뉴욕에 사는 이들이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
두 번째 의문인 수장. 사살의 적절성에 비해 좀더 철학적인 논의가 제기되기도 합니다. 언론인 앤서니 캐롤 씨는 “최후를 맞은 뒤 수장된 그의 운명이 과연 알라 신의 뜻인지 궁금하다”고 합니다. 이슬람 종교권에서는 사자(死者)은 다시 태어날 때까지 잔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죽음을 신의 뜻이라고 해석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갖게 된 궁금증입니다. 네이비씰이 빈 라덴을 수장한 것은 그의 묘지가 테러의 성지가 돼 국제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슬람 관습에 따라 수장했다’는 미국의 설명이 그리 관대해보이진 않습니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
빈 라덴의 사망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보는 사람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금융위기 극복과 재정위기 타개라는 엄청난 과제를 무난하게 처리해왔다는 평가를 받는 오바마 대통령이지만 외교적 측면에서는 낙제점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그에게 이번 작전은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호재입니다. 그의 지지도를 52%를 넘어섰습니다. 레임덕은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빈 라덴 사망으로 미국과 세계 경제가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빈 라덴의 죽음이 미국 경제나 특정 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주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정치 영향력도 차츰 퇴색할 것이고 9.11 테러 당시 보여준 미국인들의 결집도 느슨해진 상태에서 빈 라덴의 사망이 장기적 효과를 거두긴 힘들다는 것입니다.
공화당은 이번 일로 의기소침해져 있습니다. 2012년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토론회가 맥이 빠진 채 진행됐고 오바마의 재선을 막을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비관론도 나옵니다. 그래도 공화당에는 포퓰리즘의 상징 인물인 사라 페일린이 있습니다. 그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플랜이 구체화하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이번 빈 라덴 사망을 계기로 2012년 미국 대선을 향한 레이스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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