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222 / 작성일 : 2014-12-24
알라바마 ‘Roll Tide’
한국경제신문 유병연 기자
“목화농장만 있는 시골로 가는구나.”
“그곳에 가면 절반이 흑인이다.”
“KKK의 본거지이니 몸조심해라.”
미국 알라바마로 연수를 간다고 하자 회사 선배들이 보인 반응들이다. 기대감 속에 걱정도 조금 안고 왔지만 실상은 좀 달랐다. 알라바마주의 총 인구는 5백만명 정도. 그 중 25% 가량이 흑인이다(2010 센서스 기준). 포트 데이비스처럼 흑인비율이 95%를 넘는 곳도 있지만 연수지인 알라바마대학이 위치한 터스칼로사(Tuscaloosa) 시는 대학 중심의 도시로 흑인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 알라바마주 1인당 GDP는 3만6000달러. 전체 50개주중 46위에 머무는 만큼 이곳 터스칼로사 역시 대도시 풍경과는 거리가 멀지만, 한적하고 소박한 미국 생활이 주는 색다른 매력을 갖고 있는 도시다. 한국에는 다소 낯선 알라바마주 터스칼로사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연수기를 시작한다.
◆Tuscaloosa, 'the Black Warrior'
이곳에 대한 첫 인상은 터스칼로사란 이름에서 비롯된다. 알라바마주가 미국 지도에서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는데, 영어스럽지 않은 ‘터스칼로사’란 도시 이름은 왠지 생소하고 시골스러운 느낌마저 풍긴다. 아니나 다를까. 터스칼로사는 과거 이 지역을 지배했던 전설적인 원주민 추장 이름이라고. 영어로 번역하면 ‘Black Warrior(검은 전사)’ 쯤 된다고 한다. 이름에서 풍기는 인상만큼 크고 강한 족장이었다나. 스페인군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포로로 잡혔으나 포로들을 규합해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인디언들을 몰아낸 미국인들이 원주민 추장 이름을 도시 이름으로 갖다쓰며 역사를 지키는 모습도 재밌다.
터스칼로사는 전형적인 대학도시다. 한국의 왠만한 동 크기의 광할한 캠퍼스를 자랑하는 알라바마 주립대학(University of Alabama)은 이곳에서 가장 많은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는 최대 기업이다. 학기중에는 도시가 제법 북적이지만, 학기가 끝나면 텅 빈 듯한 느낌마저 준다. 심지어 방학 중에는 문을 닫는 식당들도 있다.
◆남부의 보수색채가 물씬 풍기는 도시
터스칼로사는 보수적인 곳이다. 미국 북부 생활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남부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도 따스한 지역이지만, 몸매를 드러내는 옷차림은 구경하기 힘들다.
알라바마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끈 그 유명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참고로 몽고메리는 터스칼로사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로, 현대차 공장이 위치해 있다.) 1955년 한 흑인 여성이 버스 안에서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자 전국에 흑인 인권운동이 일었다. 미국 주중 가장 마지막까지 백인과 흑인이 결혼하는 것을 법으로 막은 것도 알라바마의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알라바마에서 다른 인종간 결혼이 허용된 것은 불과 14년전(2000년)의 일이다.
하지만 학교 중심의 도시라서 일까. 인터내셔널 학생들이 넘쳐나는 만큼 인종 차별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KKK의 본산지라는 멍애 때문일까. 인종 차별에 대해서는 다른 주보다 더욱 강경하게 대응한다. 이 곳 백인들도 순박하지만, 흑인들도 순한 느낌이다. 술집이 많지 않을 뿐더러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클럽도 한국의 호프집 풍경처럼 소박하긴 마찬가지다. 밤늦게 돌아다녀도 무방할 정도로 치안도 좋은 편이다.
◆“Roll Tide"
미국의 시골이긴 하지만 한국 시골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월마트 홈디포 등 왠만한 대형마트와 백화점들은 대부분 들어와 있다. 명품을 취급하는 곳은 드물지만 생활 편의 시설과 프랜차이즈 먹거리들은 모두 찾아 볼수 있다. 한인 식당이나 식료품점이 없는 것은 이곳의 단점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본이나 중국식당들은 있지만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한인 식당은 없다. 중국 식료품점이 있어 왠만한 한국 식재료들을 팔고는 있지만, 본격적인 장을 보려면 50여분 차를 몰고 버밍험에 있는 한인마트로 가야 한다. 3시간 차를 타고 달려 아틀란타로 가면 대형 한인마트에서 한국과 같은 수준의 식재료들을 구할 수 있다.
알라바마주에는 프로구단이 없다. 프로야구나 축구, 농구 구단이 없다. 알라바마 인구가 적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실제 알라바마 인구는 5백만으로 미국 전체 중 중위권(23위)이다. 아무래도 소득수준이 낮은 탓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이곳 알라바마 사람들은 대학 미식축구에 열광한다. 대학 미식축구팀 경기결과에 따라 도시 전체가 울고 웃고 한다. 알라바마 대학의 랜드마크 건물인 스타디엄의 수용인원은 11만명. 이곳 터스칼로사 시민이 10만명이 안된다고 하지만 경기가 있는 날이면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다.
1892년 알라바마 대학에 미식축구팀이 만들어졌을 때 학교 로고 색상(하얀 바탕에 진홍색 A 마크)을 따서 ‘Crimson(진홍색) White(하얀색)’라고 팀 이름을 붙였다. 그 후 한 유명 스포츠 전문기자가 진홍색 유니폼을 입고 밀물처럼 공격에 나서는 이 팀의 경기 모습을 보고 ‘Crimson Tide’라는 이름을 붙여 현재의 팀 이름으로 정착됐다. 경기를 앞둔 날이면 지나가는 사람들끼리 응원 구호인 ‘Roll Tide’를 외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끼리는 교통사고가 나도 ‘Roll Tide’만 외치면 없던 일로 하고 웃으며 헤어진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만큼 대학 미식축구에 대해 광적이다.
◆한인 커뮤니티
터스칼로사 시에 사는 한인들은 500명 정도다. 가장 큰 비중은 알라바마대학에 유학온 한인 학생들로 100~150명 정도다. 실제 이곳에서 사는 한인들은 250~300명 정도에 불과하다. 한인들의 가장 많은 직업군은 교수다. 알라바마 대학에 20여분의 교수들이 계신다. 그외 의사, 부동산 임대업, 자영업, 회사원 등 다양한 직업들을 갖고 있다. 이곳 한인커뮤니티의 중심은 2곳의 한인 교회다. 대부분 한인들이 두곳의 중 한 교회에 다닌다. 일요일 오전 예배 뒤에는 점심을 제공한다. 식사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보를 주고 받는 친교와 정보교류의 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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