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222 / 작성일 : 2014-12-24
한국 제주도와 위도가 비슷한 미국 터스칼루사는 겨울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드물 정도로 춥지 않은 날씨를 보인다고 한다. 눈도 거의 내리지 않으며 내리더라도 아주 적은 양으로 쌓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겨울은 크게 달랐다. 1월말, 이른 아침에 애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우리 부부는 우체국을 들른 뒤 ELI 영어 수업을 받으러 앨라배마 대학에 갔다. 그런데 우체국에 들렀을 때부터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함박눈 속에 강의실에 가보니 오전 11시부터 모든 학사 일정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밖으로 나오자 도로에는 이미 눈이 쌓였고 일부는 빙판길까지 됐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나왔는데 이때부터 최악의 교통 정체를 겪어야 했다. 눈은 2시간여 만에 그쳤지만 평소 대학에서 집까지 15분이면 가던 길이 이날은 3시간 넘게 걸렸다. 곳곳에서 차들이 미끄러져 접촉사고가 났고, 일부 구간은 아예 꽉 막혀 차들이 움직이질 못했다. 터스칼루사 주민들은 이런 눈길 운전을 처음 해보는 것처럼 보였다. 이리저리 우회 도로를 찾고 겨우겨우 움직인 끝에 애들을 학교에서 픽업할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와서야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날 내린 눈은 2인치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눈으로 터스칼루사 관공서와 학교 등은 하루 조기 퇴근 및 하교, 그리고 이틀간 휴업까지 모두 사흘간 차질을 빚었다.
그나마 터스칼루사 같은 소도시의 형편은 나았다. 비슷하게 눈이 내린 인근의 버밍햄이나 애틀란타같은 대도시의 도로는 한마디로 올스톱이 됐다. 수많은 차들이 오도가도 못한 채 조난을 당했다. 일부 시민들은 차를 버리고 걸어서 이동하기도 했다. 수천명의 학생들이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사흘간 학교에서 지내며 부모의 픽업만을 기다려야 했다. 조금 쌓인 눈이 미국 남동부 지역을 재난 상황으로 몰아간 것이다. 앨라배마주와 조지아주는 몇 센티미터의 눈 때문에 비상 사태까지 선포했다.
이번 눈 재난은 사실상 인재였다. 당시 눈과 함께 영하의 기온이 일찌감치 예보됐지만 당국의 대처는 너무 안이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1월초에는 눈이 아닌 한파만 예보됐음에도 재빨리 휴교를 감행했던 당국이 이번에는 왜 이렇게 어설프게 대응했는지 의문이다. 당국은 이날 아침에 눈이 쌓이는 것을 보고나서야 뒤늦게 부랴부랴 일제히 퇴근과 조기 하교 조치를 내렸는데, 이 때문에 도심에 차량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SNS에선 겨우 그 정도의 눈으로 난리가 났냐며 남부를 한심하다고 조롱하는 미국 북부 주민들의 글도 잇따랐다.
다만 재난 중에 인상적이었던 점은 미국 시민들의 배려와 인간애였다. 당시 도로는 차량들로 꽉 찼지만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서도 서로 양보 운전하며 질서 있게 움직였다. 경쟁적으로 가기 위한 자동차 경적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상황이 매우 심각했던 대도시에선 차를 버리고 추위에 떨며 이동하는 사람들에게 도로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음식을 제공하고 안식처도 제공했다는 훈훈한 미담이 잇따랐다.
기상 재난을 맞아 로컬 방송에선 24시간 기상 뉴스 특보를 내보냈다. 방송 기자로서 기상 특보는 어떻게 하는지 관심이 있어 살펴보았는데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상 캐스터가 날씨를 설명하고, 중계차를 연결해 각 지역의 상황을 반복해서 전달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글과 사진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겨울은 ‘끝나지 않는 한파와 눈보라, 지겨운 추위’라고 매스컴이 떠들 정도로 미국 대부분 지역에서 혹독했고 터스칼루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례적인 한파는 이상 기후 탓에 북극권에 머물러야 할 찬 공기가 남하하면서 비롯됐다고 한다. 갈수록 기상 이변이 심화되고 있는 듯하다. 그만큼 대응도 좀 더 적극적이고 세밀해져야 함을 이번 미국 남부의 눈 재난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아닐까 생각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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