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222 / 작성일 : 2014-12-24
‘1만6000달러(1700만원) VS 150만원’
미국과 한국의 맹장수술비용 차이다.
최근 한국에는 의료 민영화와 관련, 인터넷에 ‘의료민영화가 되면 맹장수술에 1500만원이 들어 미국처럼 아파도 병원에 못가게 된다’는 괴담이 퍼져 논란이 됐다. 이는 ‘의료보험 민영화’를 의료 민영화로 오해한데 따른 것이지만, 실제 많은 미국인들이 아파도 병원에 못가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미국에서도 한 환자의 실제 맹장수술비 영수증이 인터넷에 퍼져 논란이 인 적이 있다. 환자는 맹장수술을 받고 하루를 입원한 뒤 퇴원했다. 그가 공개한 영수증에 적힌 비용은 무려 5만5000달러(6000만원). 맹장수술비 1만6000달러, 수술 후 2시간 회복실을 쓴 비용 7501달러, 하루 입원비 4878달러, 마취비용 4562달러 등이 포함됐다.
미국 국민들의 가장 큰 파산 이유가 ‘의료비’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의료비가 신용카드나 주택대출 등을 누르고 파산 이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값비싼 의료비는 미국의 정치?사회적 문제다.
미국 내 의료보험 가입자 수는 약 2억5000만명. 반면 비싼 보험료 탓에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비가입자 수도 4000만명에 달한다. 무보험자는 병이 안나기만을 바라지만, 가입자 역시 보험으로 커버되지 않은 의료비(개인부담금)를 내지 못해 파산하는 경우도 많다.
미 정부가 한해 국민 1인의 의료?건강에 지불하는 비용은 8000달러. 세계 1위 규모다. 한국(2300달러)의 4배에 달한다. 하지만 2013년 한해에만 미국 국민 중 170만명이 의료비를 내지 못해 파산을 신청했다. 19~64세 미 국민의 20%에 달하는 5600만명이 과도한 의료비 영수증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통계도 있다. 반면 미국 의료 서비스의 질은 세계 최하위권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가장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가장 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 국민들이 미국을 ‘Medical Hell’이라고 자조섞인 평가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의료시스템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는 상당부분 제도에 기인한다. 한국의 경우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적 의료보험 시스템을 기반으로 민영의료보험이 본인부담금 등을 보완해 주는 형태다. 반면 미국은 민영건강보험이 국영건강보험을 대체해 주된 건강보험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은 민영보험 중심으로 의료보험이 발달했기 때문에 전국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영의료보험제도가 없다. 다만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위한 무상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Medicaid)와 65세 이상 노인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인 메디캐어(Medicare)라는 사회보험제도가 존재한다. 때문에 미국에서 의료 비용에 가장 시달리는 계층은 65세 미만의 ‘중산층’이다.
이처럼 왜곡된 미국의 의료시스템 속에 시행된 오바마 행정부의 의료보험 개혁도 커다란 도전과 반발에 직면해 있다. 성인은 의무적으로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벌금을 내도록 하는 조항은 많은 국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의료 개혁안이 실현되면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되고, 각 주는 보험 부담 때문에 파산하게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오바마 행정부의 의료개혁 제도를 실제 경험해본 국민들 가운데서도 새 제도가 세금만 올리고 의료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등 부작용이 많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 정부 차원에서 이미 전 주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오바마 의료개혁안의 모델이기도 한 매사추세츠에서 오히려 오바마 캐어에 반발, 민주당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불과 1년전 대선에서 오바마가 26%포인트 차로 이긴 민주당의 아성인 메사추세츠에서 무명의 공화당 후보 스캇 브라운에게 상원의원 자리를 넘겨주는 일도 벌어졌다. 공화당 브라운 후보는 상원 선거 캠페인에서 오바마의 의료개혁 저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고, 전 주민 의료보험제를 경험해본 매사추세츠 주민들은 오바아 캐어에 대한 반발로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이 저항에 부딪히는 숨은 이유는 ‘보험업계의 로비’ 탓이다. 미국 오픈시크릿(openserets.org)에 따르면 미 보험업계는 1998~2014년 미국에서 가장 많은 로비 비용을 쓴 업종 중 하나다. 미 보험업계는 이 기간 정관계 로비 비용으로 2조원(20억387만2529달러)을 지출, 제약업계(28억5925만9960달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13년 한해만도 미국에는 9900명의 로비스트들이 활동하며 백악관과 의회 등 정관계를 상대로 32억3000만달러에 달하는 로비비용을 뿌렸다. 이들은 업계나 기업의 의뢰를 받아 고객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거나, 불리한 법을 막는데 앞장선다. 이 가운데 보험업계는 한해 1억5000~2억 달러에 달하는 정치 자금을 뿌려 대며 의료보험 개혁 저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오바마 캐어의 핵심 조항 중 하나로 공공보험이든 민간 보험이든 하나를 선택해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의 의료보험 강제가입 조항이 미 보험업계를 떨게 하는 요소다. 공공보험을 선택할 수 있는 소위 ‘퍼블릭 옵션’이 결국은 공공보험을 기반으로 한 건강보험 체계로 이어질 것이란 걱정이다. 이 경우 민간 보험사들이 독점하는 건강보험 시장이 공영화되며 보험사들의 매출이 축소되고, 정부와의 협상력도 줄어 의료보험비 지출이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처럼 오바마 캐어를 둘러싼 민주당과 공화당 간 정치 싸움의 배경에는 업계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그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한 ‘지원’이 깔려 있는 것이다. 가장 선진화된 미국 자본주의의 ‘그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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