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222 / 작성일 : 2014-12-24
미국 생활을 하면서 가장 불편을 느낄 때 중의 하나가 바로 이발을 해야 할 때입니다. 돈 몇 푼의 문제가 아니라 나름의 헤어 스타일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익히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미국인 헤어 디자이너의 솜씨는 한 마디로 `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미국인들이 원래 손재주가 없는데다, 백인이나 흑인의 머리결과 다른 동양인 특유의 머리결을 다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터스칼루사에는 한인 교포의 수가 적어 한국인이 운영하는 헤어숍이 없는 상황입니다.
저의 경우 "미국에 왔으니 미국 생활을 제대로 경험해 봐야겠다"는 용기를 가지고 월마트 내에 있는 헤어숍에 찾아갔습니다. 헤어 디자이너에게 한국에서 머리를 짧게 잘랐을 당시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휴대폰으로 보여주면서 그대로만 잘라달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있게 `오케이' 하는 모습에 안심하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만용을 부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의 머리는 정말이지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당황한 저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면서 머리를 어떻게 잘라야 할지 헤어 디자이너에게 설명해 주려 했지만, 짧기만 한 저의 영어를 헤어 디자이너가 알아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저의 머리는 처참한 몰골로 변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저의 모습을 보고 와이프는 박장대소를 했고, 대학교 수업을 같이 듣는 타사 기자들마저 안Tm러움을 표현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말이지 제가 봐도 군대 갈 때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것보다도 못한, 제 인생 최악의 헤어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몰골로 미국 생활을 계속 해야 하나 싶을 때 저를 구원해 준 것은 조선일보 이경은 씨였습니다. 이 기자가 이웃 미국인에게서 소개받은 제이미라는 아주머니가 저의 구세주가 되어주었습니다.
제이미는 유명 헤어살롱에서 10여년 간 일한 후, 아이들을 키우느라 집에서 부업으로 헤어커팅을 하고 있는 미국인 아주머니입니다. 푸근한 인상에 말솜씨도 좋아 머리를 자르면서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시간 가는줄도 몰랐습니다.
저도 머리를 잘랐고, 제 아들도 머리를 잘랐는데 솜씨가 참 괜찮았습니다. 한국의 여느 헤어 디지이너 못지 않은 솜씨여서 미국인은 손재주가 떨어진다는 저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려 주었습니다. 더구나 휴대폰에 수십 가지의 헤어스타일 사진을 저장해 놓았다가 보여주면서 마음에 드는 헤어스타일을 고르라고 해 여간 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미국에 오셔서 머리를 자를 일이 있다면 버밍햄이나 몽고메리의 한인 미용실에 가서 자르지 않는 한 제이미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이미의 전화번호는 `251-589-3771'이며, 미스터 안에게서 소개받았다고 얘기한 후 찾아가시면 됩니다. 찾아가실 때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13820 Neighbors Drive Tuscaloosa'로 찍고 찾아가시면 됩니다. 미국 생활을 할 때 아주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알려드립니다.
이왕 추천한 김에 자동차보험 설계사도 한 명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미국의 자동차보험은 다소 비싼 편입니다. `네이션와이드'나 `스테이트팜'처럼 전국적인 영업망을 갖춘 자동차보험의 경우 2만달러에 못 미치는 중고차를 사더라도 6개월에 600~800달러의 자동차보험료를 내셔야 합니다. `프로그레시브'나 가이코' 등의 인터넷 자동차보험을 이용하면 이보다 100~200달러 가량 보험료가 저렴합니다.
네이션와이드나 스테이트팜 등 대형 보험사의 장점은 자동차 사고가 났을 경우 신속하고 친절하게 사고 처리를 도와준다는 점입니다. 저는 네이션와이드의 Stephen B.Baldo-Downs에게서 보험을 가입했습니다. 매우 합리적이고 친절한 사람이라서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전화번호는 205-345-5958, 대리점 주소는 `408 15th Street Tuscaloosa'입니다. 마찬가지로 미스터 안에게서 소개받았다고 얘기하고 찾아가시면 됩니다. 저렴한 보험료를 원하신다면 인터넷에서 프로그레시브나 가이코 등을 찾아서 이용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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