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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연수기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에피소드를 낳고

작성자 : 222 / 작성일 : 2014-12-24


7월 5일 입국해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Chapel Hill)에 둥지를 튼뒤 전기, 수도, 인터넷 등 정착에 필요한 사항들을 대충 마무리해놓고 7월 19일 미국에서의 첫 여행에 나섰다. 

첫 여행지는 미국 남부의 역사적인 도시 찰스턴(Charleston)과 휴양지로 유명한 사바나(Savannah). 남북전쟁이 처음 발발한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은 시내 곳곳에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는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했다. 특히 흑인 노예들을 거래했던 노예시장의 흔적도 남아있었다. 또 해안가 Waterfront에서 바라본 Fort Sumter(섬터 요새)에서는 150여년 전 남북전쟁의 서막을 알리며 요란하게 울려퍼졌을 총성이 아직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찰스턴에 이어 도착한 조지아주의 제1항구도시 사바나는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인 남부 도시다. 애틀란타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포화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으나 사바나는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사바나의 아름다운 도시 모습에 반한 북군 지도자들이 부하들에게 방화와 약탈을 금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사바나는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John Wesley) 당시 성공회 신부가 회심하기 전에 사목했던 곳이기도 하다. 

 

#1. 사바나 시내를 벗어나 현수교를 건너 Tybee Island에 도착했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해변가에 대충 주차한뒤 beech로 달려갔다. 1시간 가량 물놀이와 모래성 쌓기로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노스캐롤라이나로 출발하려다 보니 차 앞 유리에 주차위반 딱지(35불)가 있는게 아닌가. 순간 '올 게 왔구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바로 시청을 찾아갔다. 

주차행정 책임자인 Mr. Pete씨는 내가 왜 주차위반을 했는지 조목조목 설명해줬다. 길거리 주차를 하려면 미터기에 동전을 넣고 영수증을 차에 꽂아두어야 했는데 마침 동전이 부족해서 그냥 무시했던게 화근이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차하는 법을 잘 몰랐다고 해명했더니 20불로 깎아줬다. 그래도 계속 다음부터 조심할테니 좀 봐달라고 했더니 Pete씨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갑자기 어디에서 왔냐고 묻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자기도 인천 부평에서 산 적이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알고봤더니 1972년에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던 사람이었다. 이때다싶어 나도 카투사(KATUSA)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동료의식을 자극했더니 그는 주차위반 딱지를 찢어버리고 그냥 가라고 했다. 차에서 긴장하며 어떻게 됐을까 걱정하고 있던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해줬더니 "남자들은 역시 군대 얘기가 나오면 뭔가 통하는게 있다니까"라며 말해 한참을 웃었다. 

 

#2. 노스캐롤라이나의 여름 더위도 한국 못지 않게 맹위를 떨쳤다. 한 낮에는 30~35도를 넘나들 정도였다. 아이들도 튜터 숙제만 하고 있으려니 너무 답답해하는 듯해서 8월 7일 노스캐롤라이나의 스모키 마운틴(Smoky Mountain)으로 두번째 여행을 떠났다. 

스모키 마운틴 초입인 Blue Ridge Parkway에 도착했을 때 차 계기판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기름이 거의 바닥 난 것이다. 서둘러 내비게이션으로 가까운 주유소를 찾아 나섰으나 땅 덩어리가 너무 넓어서인지 아니면 내비게이션 성능이 떨어진 탓인지 주유소는 나타나지 않고 기름은 계속 소진돼갔다. 설마설마 했으나 결국 차가 멈춰서는 사태가 발생했다. 순간 앞이 캄캄했다. 낯선 이국 땅의 도로변에서 누군한테 기름을 얻을 것인가. 급한 마음에 AAA에 전화해 급유 신청을 했다. 내가 있는 곳까지 서비스 차량이 도착하는데 45분이 걸린다고 했다. 갈길은 먼데 시간을 허비하게 됐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근처 마을로 들어가던 차량이 멈춰서더니 Joa Eller씨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딱한 사정을 얘기했더니 그는 자신의 집에 있는 비상용 기름을 가져다줄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비상용 기름이 없었는지 바로 언덕 너머 주유소에서 기름을 사다 주겠다고 했다. 생면부지의 동양인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니 감격스러웠다. 과연 그는 10분 뒤에 기름을 사와서 친절하게 내 차에 넣어주었다. 나는 Eller씨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약간의 사례비를 건넸더니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했다.나중에 다른 미국인에게 이같은 에피소드를 얘기해줬더니 "그는 분명 천사(Angel)였을 것"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다급한 상황에 처했던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은인이었다. 

낯선 땅에서의 여행은 설렘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치밀하게 여행을 준비해도 빈틈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돌발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교훈을 얻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위에서 소개한 두분의 미국인은 이 사회의 극히 일부일 수 있다. 하지만 나로 하여금 미국이라는 사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쁜 인연도 있겠지만 좋은 인연을 생각하며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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