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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의 미성년 시절

대산선생이 향리를 떠나 중국대륙으로 향한 것은 20세 때인 1936년이었다.

친지의 호의와 연줄로 혈혈단신 만두 대련(大連)으로 간 대산선생은 초지 그대로 수학의 길을 걸었다.
집안 어른이자 애국지사인 신갑범(愼甲範) 선생의 도움으로 이육사(李陸史) 등 적잖은 애국지사들의 지우(知遇)를 얻게 된 것도 그 시절이었다.
이들 애국지사들과의 교류와 지도로 대산선생은 목적과 목표를 더욱 확고하게 인식하는 투철한 소신의 청년으로 성장해갔다.
대산선생은 대련에서의 후지다상사를 그만두고, 북경에서 북일공사를 설립해 번돈의 상당금액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내놓는다. 이미 조국광복이라는 민족공동의 목표 앞에 사업가로서만 몸담고 있을 수 없다는 실천적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곡 장사를 통해 남은 이윤은 독립운동 자금이 되었고,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대산선생은 1944년 투철한 민족관과 인생관을 깨우치게 한 이육사가 일제에 피검, 투옥 후 무참히 학살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한동안 허탈감에 고통을 받기도 하였지만, 대산선생 역시 경황없는 피신의 길을 헤매야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북경에서 8·15광복을 맞이했다.

대산신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