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선생은 1917년 8월 11일
전남 영암군 '솔안마을'의 거창 신씨 집성촌에서 신예범과 문화 유씨 매순 사이의 6남 중 5남으로 태어났다.
대산家는 사대부 집안으로 영암에서 대대로 거주해 온 집안이며, 부친은 한학자이자 애국지사였다.
대산선생의 맏형 신용국은 영암의 항일농민운동의 주동자이며, 독립운동가였으며, 셋째 형도 독립운동가로서 일본 동경에서 항일 학생운동에 가담하였다.
이런 연유로 대산家는 항일가족으로 지목되어 일제의 감사와 탄압을 받았다.
어린 시절 이러한 집안환경은 대산선생에게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주었고, 일제에 대한 남다른 증오심을 갖게 되었으며, 망국의 슬프을 직접 체험하며 성장하였다.
어려운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대산선생은 유달리 향학열이 강하였지만, 항일가족이란 낙인으로 정규학교 진학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로지 독학으로 한학과 서학을 공부해야 했으며 이후 점진적으로 상당한 실력을 쌓게 되었다. 그러나 대산선생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넓은 세계를 공부하기 위해 약관의 나이에 서울을 거쳐 중국대륙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만학(晩學)으로나마 학문을 마음껏 닦고, 장차 더 높이 웅비할 수 있는 실력을 가꾸어 훗날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자 중국대륙행을 결심하였다.